등대와 향단을 완성함

성경말씀
출애굽기 37장 17~29절
설교일자
202110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11 21:43
조회
51
▣ 출애굽기 37:17-29 등대와 향단을 완성함
17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 가지 여섯이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잔대의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왔고 등잔대의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왔으며
19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이 그러하며
20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다시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였으니
22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 등잔 일곱과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을 순금으로 만들었으니
24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25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
26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둘렀고
27 그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쪽에 만들어 제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28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29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

히브리서 8장5-6절을 읽겠습니다. <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셧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히브리서에서 말한 ‘그들이 섬기는 것’이란 출애굽기에 나오는 성막입니다. 그것을 ‘모형’과 ‘그림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등잔대와 분향단 또한 하나님이 장차 보이실 모형과 그림자를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이 넘게 해오시던 성도님들은 단번에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등잔대의 빛과 분향단의 향 앞에서 넘쳐흐르는 성령의 충만, 감동, 감격이 되살아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막부터 성소까지 찬찬히 다시 한번 훑어볼까요. 동쪽 출입구를 지나 들어오면 바로 앞 번제단이 놓여있고 그 맞은 편엔 물두멍이 위치해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성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성소 안에는 제사장이 출입할 수 있었는데 오른편엔 떡상이, 왼편엔 등잔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엔 분향단이 있고 그 뒤로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그 휘장 안으로는 대제사장만이 출입이 가능했는데 그 곳에 바로 언약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증거궤와 그 위 뚜껑 속죄소가 있습니다. 이 성소는 가축의 가죽으로 덮여있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성소 안은 캄캄해집니다. 유일하게 그 성소에서 빛을 내는 이 등불은 저녁부터 아침에 동이 틀 때까지 꺼트려서는 안됩니다.
등잔대의 빛은 그 앞에 있는 떡상을 향하고 있고 대략 그 크기는 높이가 3규빗인 136.8cm 폭이 2규빗으로 91.2cm로 추정됩니다. 등대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정금으로 매우 희귀하고 또 아주 고가의 보물로 제작됩니다. 정금 한 달란트로 등잔대와 불집게 불똥그릇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당시 정금 1달란트는 오늘날 약 45억원에 해당하는 값입니다. 모두 값비싼 정금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되 순결함과 깨끗함 그리고 변함없이 섬겨야 할 것을 말해주는 단락입니다. 이 등대는 망치로 금을 두드려서 편 다음 뽀족한 도구를 사용하여 세밀하게 가공했습니다. 등대는 가지가 줄기로부터 뻗어 나와 한 모체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나무의 형상을 닮아 있습니다. 나무 중 이스라엘에서 봄에 가장 먼저 움이 터서 어떤 경우는 2월 말 이전에 꽃이 피는 살구나무를 형상화 했는데, 살구나무/살구꽃을 언급한다는 것은 생명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살구나무>를 히브리어로 <사케드>라고 하고 <지키다>를 <샤카드>라고 하는데 구약의 히브리어가 처음 기록 될 때엔 자음으로만 기록되었기 때문에 읽기 위한 글보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예레미야 1장 11-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1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끊는 가마 환상을 보이시는 장면에서 이 살구나무를 먼저 보이시면서 “나는 지켜 행하는 이다”라는 것을 먼저 말씀해주십니다. 따라서 등대의 잔을 살구꽃 형상으로 만든 이면에는 단순히 장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오는 제사장들이 이를 보고 진리가운데 항상 깨서 경성하며 영적으로 각성하라는 묵시적인 가르침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할 때 원래도 어둠이 먼저 있었습니다. 빛이 없다면 지금도 어둠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어둠 안에는 혼란이 있고 무서움이 있고 생명이 없으며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저희가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일까요? 어둠 가운데 있으면 그렇게 겁이 납니다. 거기다 낯선 곳이라는 전제가 붙으면 두려움은 배가 되겠죠. 그 속에서 손 하나 뻗는게 그렇게 조심스럽고 한 발 내딛으려 해도 몇 번을 더듬더듬하며 겨우 한 발 옮깁니다. 그런 어둠을 밝히는 것은 소리도 아니고 몸짓도 아니고 오직 빛이라야만 그 곳을 밝혀줍니다. 해서 오늘 이 등잔대는 저희에게 너무나 중요한 진리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등잔대는 이 세상 어둠을 밝히실 유일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이 가득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 가운데 빛은 곧 사망가운데 빛을 보이신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하나님께서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는 빛으로 오셨고, 예수님의 이 빛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에 죽은 영이 살아나고, 맹인 된 자가 빛을 보고,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길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둠의 정도를 밝히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는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이, 그의 이름이 선포되어지는 곳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것이 성소 안에 등대를 보여 졌다면 이제 실제로 온 예수를 보아야 합니다. 매일의 떡과 꺼지지 않는 등은 참 생명의 예수를 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해서 예수의 빛 되신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인간의 본분을 다하게 만드십니다.
빛 가운데 선다는 것은, 내 미래가 보장되고 내 삶이 안정적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분을 알게 하는 지혜에 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알고 그분을 경외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코로나시대에 혼란과 두려움과 이기심과 우울함과 무력감이 만연해졌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붙들고 살아간다 고백하는 우리는, 내일을 모르는 사람처럼 빛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걸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이 천지의 시작과 끝을 너무나 명확히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오늘 저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분명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24:42>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13>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26:40>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마26:41>라고 저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25절에 분향단을 만듭니다. 레위기16장13절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이 분향단은 대제사장들이 지성소로 들어가서 증거궤와 속죄소를 바로 마주하지 않고 그 향연으로 가릴 수 있게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만들라 하신 대로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기에 저희가 마주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나답과 아비후처럼 죽지 않도록 이 향의 연기로 그것을 보이지 않게 덮어줍니다. 오늘날 이 향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예수님이 되어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저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임재를 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흠 없고 영원한 중보자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예수님은 오늘도 쉬지 않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 때 인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잠잠하라 합니다. 저희 깨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소망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은 언제나 저희를 애워 쌀 것입니다. 그 때 전쟁은 오직 주께 속한 것임이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등잔대에 늘 채운 감람유처럼 성령의 충만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