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에서 전도

성경말씀
사도행정 17장 10~15절
설교일자
2020071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19 21:33
조회
38
행 17:10-15 베뢰아에서 전도(7월 19일 주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시기하는 유대인들로 인해 또 다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서쪽으로 대략 65km정도 떨어진 '베뢰아'로 갑니다. 이곳에도 유대인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베뢰아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매우 큰 해안 도시였기 때문에 아마도 무역과 다양한 민족이 오고가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도 다소 거칠고 늘 경계하는 모습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뢰아는 넓은 평야지대를 앞에 둔 도시로서 평온함을 유지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너그럽다(유게네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고상하다', '열려 있다'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면서 동시에 회당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간절한 마음으로(편견 없이)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진짜 진리의 말씀인지 날마다 성경을 검토(상고)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매일 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곳에서도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바울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알고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유대인과 회당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베뢰아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형제들은 바울을 일단 바다로 피신시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하려는 계획을 사전에 입수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혹은 정치적 관련자들이 바울에게 어떤 정보를 준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계속 머물면서 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일단 바울은 '아덴(현재의 그리스 아테네)' 지역으로 가게 되는데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습니다. 베뢰아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대략 33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덴'까지 가게 됩니다.
학자들은 베뢰아의 형제 중 한 사람이 베뢰에서 아덴까지 바울과 동행한 것으로 봅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로마서 16장 21절에 나오는 '소바더'로 생각됩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나오는 '소바더'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베뢰아 사람이었기 때문에 바울과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울은 아덴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베뢰아에 두고 온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사역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매우 큰 도시인 아덴으로 두 사람이 속히 와야 함을 말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은 격렬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굳어 있어서 그렇고, 당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별로 문제되지 않는 일들이 말씀(복음) 앞에서는 큰 죄악이 되기 때문에 격렬한 모습이 나타난 것일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바울에게도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죠. 그러나 야손, 소바더와 같은 인물들과 동역자들이 있기에 또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에 그는 더욱 거침없이 복음 전하는 일에 노력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자세는 오늘 우리가 배워야할 모습이죠. 이번 한주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며 조금은 어려운 삶의 자리를 지켜가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