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음모

성경말씀
요한복음 9장 17~24절
설교일자
2021021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9 19:47
조회
6
요 7:19-24 예수에 대한 음모(2월 19일 금요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일(노동)'입니다. 먹기 위해 일하고, 살기 위해 일합니다. 살아 있기에 일하고, 힘이 있기에 일합니다. 대천덕 신부가 세운 "예수원"에는 "노동이 기도요 기도가 노동이다"는 성 베네딕 신부의 가르침을 따라 하루 세 번 일(노동)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을 하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기도 하면서 보통 2박 3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예수원에 가본지도 10년이 넘었지만, 그곳의 일과와 풍경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불로소득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주식, 부동산 투기, 가상화폐 등 한 순간에 평생 일해도 벌기 어려운 돈을 벌거나, 잃는 경우를 봅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성한 노동의 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한탕주의가 만연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무엇이 잘못이고 범죄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율법을 지켰으니 하나님 나라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죠.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소유하고, 간직하려고 했지 실행하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진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었다면, 예수님을 죽이려는 논의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기 때문이죠. 주님은 그것을 지적하며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단언합니다(19절).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유대인들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귀신들렸다(20절)"고 말합니다. 유대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논의했을지 몰라도 실제로 예수를 죽이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이 오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7~8개월 전에 있었던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을 다시 상기시킵니다(21절). 예수님이 과거의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친 것이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 '할례'를 언급합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가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 행하는 의식입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도 포함된 의식입니다. 만약 8일째 되는 날이 안식일이면, 할례를 행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맞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할례가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보다 먼저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것을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안식일에 38년된 환자를 고친 일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인지,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주장 모두가 틀렸음을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이 왜 화낼 일이 되는지 되묻는 것입니다(23절).
예수님이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했다"고 표현한 것은 한 사람을 그저 고치신 것으로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과 영혼 모두를 건강하게(힘있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치유=회복=구원의 공식을 말씀한 것이죠. 안식일의 핵심에는 바로 치유=회복=구원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안식일의 기본 개념과 공식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관습과 전통을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율법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논의했습니다. 누가 과연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주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24절)."
여기에 사용된 '공의(디카이오스)'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합한 자"를 의미합니다. 거룩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의 모습을 유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은 오직 예수님만이 이룰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죠.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을 바라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 생각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과 말씀이 가진 본질로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이죠.
창세기 1,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합니다(창 1:28).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두어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죠(창 2:15).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그냥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채우시는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그들의 삶에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하와를 꾀어 하나님의 일하심이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게 됩니다(창 3:16~18). 일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타락 이후에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거룩한 일이 불평과 불만이 섞인 일로 전환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이 원하시는 섭리가 아니었습니다. 노동의 가치와 신성함을 점차 사라지고, 불로소득에 대한 관심만 높아지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사탄의 승리가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일을 외모로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외모만 갖춘다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와 정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세울지 고민하며 신성한 노동과 성실함의 가치를 소유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삶과 모든 날들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귀한 날이 되고, 치유=회복=구원의 은혜가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