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성경말씀
요한복음 8장 1~11절
설교일자
2021022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3 11:47
조회
7
요 8:1-11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2월 23일 화요일)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존 오웬"은 17세기 청교도이자 목사였습니다. 그는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존 오웬은 학문과 영적인 깊이가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서 청교도의 황태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쓴 책들 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느 주제는 바로 "죄"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존심과 이기심이 가득하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기 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사람의 특징은 "죄"의 문제을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신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인 성장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존 오웬의 책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적인 성장과 더불어 영적인 성장을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로마서 1~11장에는 '죄'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죄가 있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죄 아래에 있지 말고, 구원과 은혜 안에 머물라는 권면을 강조하기 위해 죄와 관련된 내용이 지속적으로 등장하죠. 그래서 죄와 관련된 내용의 핵심은 로마서 6장 14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이런 죄인이 회심과 거듭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은 무었일까요? 구원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롬 12:1).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로마서 12장 2~21절에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만약 로마서 12장에 나온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을 삶과 가정과 교회에서 드러내지 못한다면, 12장 1절에 나오는 영적 예배자가 될 수 없겠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 6:48)"라는 말에 걸려 넘어져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12제자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었기에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이 가르치는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논의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잡기보다, 함정을 파서 예수님을 빠뜨리려 합니다. 그들은 음행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옵니다. 그리고 말씀 그 자체이신 분에게 율법을 말하며 음행한 여인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은지 시험합니다.
율법은 간음에 관에 크게 2가지를 말해줍니다. 하나는 결혼한 여자가 간음하면 죽여야 했습니다(레 20:10; 신 22:22). 다른 하나는 정혼한 여인이 간음했을 때는 돌로 쳐서 죽여야 했습니다(신 22:23~24). 남자도 같은 법을 적용받았고, 만약 여자가 창녀일 경우에는 그 사람을 처형하라는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끌고온 여인의 경우 아마도 신명기 22장 23~24절에 나온 정혼한 여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정혼하는 나이는 주로 14~15세 정도였다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을 예수님께 끌고 가면, 예수님은 당연히 율법을 무시하고 그 사람을 용서하라든지 아니면 율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이끄려 내려 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모습은 늘 가난한 자, 억울한 자, 약자, 죄인과 함께 했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죠. 율법대로 사형에 처한다고 말하면 예수님은 순식간에 잔인한 사람이 되고, 로마법을 어긴 사람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예수님께 향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손가락으로 무엇을 씁니다. 많은 학자가 예수님이 쓴 글이 무엇인지 밝혀내려 했지만, 모두 가정일 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요한이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쓴 글의 내용을 적기 보다, 예수님의 행동을 묘사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쓴 장면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언약의 돌판에 글을 새긴 장면을 떠올립니다(출 32:16). 요한복음 1장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이며, 말씀이 이 땅에 오셨다는 전제를 통해 예수님의 행동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계시며,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지만, 동시에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용서와 사랑, 그리고 회복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 사실을 잊으니 사람들을 정죄(죄 있다고 지적하는 것)하는 것에 집중한 것이죠. 예수님은 진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대상은 음행하다 잡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이 진리라고 믿고 행했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죄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죄 없는 예수님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는 것은 크게 2가지 의미가 있을듯합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음행'과 관련된 죄를 지었다는 것이죠. 로마 시대에는 음란함이 자연스러운 문화와 같았기 때문에 그런 문화에서 자유로웠던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라 예상해 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죄'는 음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성애를 죄라고 말합니다. 동성애자가 교회에 출석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별과 혐오로 내 쫓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저질렀다면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요? 성경은 모든 '죄'를 동일하게 바라봅니다(동성애 옹호가 아닙니다. 이런 문제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여인과 예수님만이 남은 장소에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재판관의 모습으로 말씀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11절)" 여인에게 던지려 했던 돌은 결국 예수님에게 향합니다(59절).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주님의 온전하심과 거룩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가 돌에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었다면, 내 안에 있는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음란함을 몰아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을 몰아내고 회칠한 무덤이 아닌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