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성경말씀
로마서 9장 14~18절
설교일자
2021060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03 06:47
조회
11
◉ 롬 9:14-18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이스라엘 사람은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했죠. 바울은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진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택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기에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습니다(7~13절). 바울은 7~13절에서 나눈 이야기를 14~29절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J. F. 파워스(J. K. Powers)는 “여기 크고 오래된 배가 있다네. 이 배는 낡아서 삐걱거리며, 상하좌우로 심하게 요동친다네. 그래서 자네는 이따금 이 배를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하지. 그러나 이 배는 자기가 갈 길로 간다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러할 것이라네. 자네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일세”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교회’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참 좋았던 교회도 어느 순간 분쟁과 다툼이 가득한 곳으로 바뀔 수 있죠. 말씀에 순종하며 성실했던 성도들이 시험을 만나면 무섭게 돌변하는 곳이 교회이고, 거짓과 모함, 소문의 확대 재생산이 반복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직접 겪었습니다(고전 3:4).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7~13절에 나오는 부르심과 택함)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 부분에 관한 설명을 다시 하면서 주님의 교회가 흔들림 없는 배와 같이 전진하기를 바랐습니다.
14~18절의 설명에서 나오는 핵심 질문은 “하나님이 불의한 분인가?(14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부르지 않는 분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이 불의한 분이 되겠죠. 바울은 이것을 해명하기 위해 출애굽기 33장 19절과 9장 16절을 인용합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황금송아지 사건과 관련된 사람 중 아론을 제외하고 모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19절은 이스라엘의 황금송아지 사건 직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자, 모세가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는 장면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죽이지 않는 상황이 있었고, 모세의 간구로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에 달려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야곱과 에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11~12절). 그리고 17절을 통해 출애굽기 9장 16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바로 왕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설명합니다. 출애굽기 9장 16절의 말씀은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왕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두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죠. 그 결과 바로와 이집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의 이름은 오히려 더 크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출애굽기에 나타난 두 개의 사건(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불순종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의 본질을 찾기 원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없는 신앙의 모습은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입니다. 다니엘 3장 18절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은 옳은 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롭고 거룩하며 존귀와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일 속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할 뿐,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 16, 18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했습니다. 창조주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왕이자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판단할 수도 없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을 보여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있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불공평하고 불의하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염려와 걱정에 휩싸이지 마십시오. 배가 많이 흔들려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시고, 때가 되면 조용히 다음 세대가 일할 수 있도록 기도로 용기를 불어넣는 하나님 사람이 되어주시길 간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