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성경말씀
로마서 11장 1~6절
설교일자
20210609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09 13:35
조회
3
◉ 롬 11:1-6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마가복음 12장에는 한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겨 놓고 타국에 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막 12:1~12). 포도를 수확할 때가 되어 주인이 종을 보냈지만, 심히 때려 거저 보냈고, 다른 종을 보냈지만 머리에 상처를 내어 보냈고, 다시 다른 종들을 보냈지만,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는 소식만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던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탐욕에 물든 인간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도 모자라 그가 보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하나님은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고, 하나님은 손을 내밀었지만, 이스라엘은 그 손을 뿌리쳤다는 바울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행동을 지적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9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11장을 시작하며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1절)” 바울의 이 질문은 하나님이 만약 이스라엘과 같은 존재였다면, 이미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기 아들을 죽인 농부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복수했겠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거나 그들에게 보복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복수의 칼을 이스라엘에게 겨누었다면,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죽이는 신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시고, 복수하셔도 할 말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 베냐민 지파라는 것을 밝힙니다. 왜 갑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것일까요? 먼저 창세기 32장 28절에는 이스라엘의 이름의 근원이 나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창 32:28)” 즉,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져준 것이 전제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함께 남유다를 형성하여 북이스라엘 10개 지파가 멸망한 후에도 오랜 시간 하나님의 성전을 지켰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배출한 지파로서 긍지와 자랑이 가득한 지파였죠.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바울이 하나님을 제대로 잘 섬겼던가요? 하나님이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복수하셨던가요? 바울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하나님이 복수하시거나 자기 백성을 버리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분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열왕기상 19장에 나오는 엘리야 이야기를 언급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이스라엘에 심판을 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한 모습을 보였길래 엘리야가 화가 나서 하나님께 심판을 요청할까요? 3절을 보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아합왕의 폭정이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헐어 버린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 엘리야만 남았는데, 그런 엘리야까지 죽이려 했으니 엘리야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엘리야도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엘리야를 제외하고도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7,000명의 사람이 있었던 것이죠. 이 7,000명의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아합왕의 폭정과 우상숭배로 가득했던 그 시기에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패역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은혜로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을 맞이한 웃사(삼하 6:1~8)도 있습니다. 웃사 사건은 율법과 백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함을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웃사 사건 이후 언약궤를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움직이는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죠.
결국 우상숭배와 같은 대혼란의 시대에 남은 자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은혜”라는 로마서 안에서 자주 사용했었죠(롬 1:5; 3:24; 4:16; 5:2, 16~21; 6:14). 은혜는 행위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행위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거룩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의 행위가 하나님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라고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