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가로막는 것들

성경말씀
로마서 11장 7~12절
설교일자
202106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10 07:2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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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1:7-12 은혜를 가로막는 것들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하나님이 백성을 버릴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과 대답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남겨 두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계십니다.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엘리야 시대에도 7,000명의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7절에 나오는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남겨진 자(남은 자)”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남겨진 자)”는 “완고해 졌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30~31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말했지만, 7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안의 사람 중에서도 “택하심을 받은 사람(남은 자)”와 “남은 자(나머지 사람들)”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왜 완고해졌는지 신명기 29장 4절과 이사야 29장 10절을 인용하면서 설명합니다(8절). 신명기 29장 4절입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리고 이사야 29장 10절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바울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던 것처럼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혼미한 심령을 주셔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신실하고 사랑이 많은 분인데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울은 시편 69편 22~23절을 인용하며 그 부분을 설명합니다. “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시편 69편은 다윗이 의로운 자들을 핍박하는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기를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윗의 기도를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이 기도문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출애굽기에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릴수록 그의 마음은 더 완악해지죠. 하나님은 바로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왕의 마음을 직접 움직이셔서 완악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바로 왕의 마음이 점점 완악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낼 때마다 완악해지고 있다는 것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가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등이 굽게 되게 했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끝일까요?
바울은 다시 질문합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걸려 넘어진 것인가?” 그리고 답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11~12절에 나오는 바울이 던지는 질문과 답의 내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스라엘이 넘어지긴 했으나 완전히 넘어져 끝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넘어짐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추구했고, 자기 의를 강조했으며, 죄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그들을 일으켜 다시 달리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이 11~12절에 사용한 용어들은 모두 경주 용어입니다. 그리고 점층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실패가 가져온 유익과 이스라엘을 통해 오게 될 복을 대조합니다. 12절에 나오는 ‘넘어짐’, ‘실패’와 같은 단어는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로마서에서 신학적 계명을 어겼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경주에서 넘어짐은 실패, 곧 패배를 의미하지만, 신앙에서의 넘어짐은 풍성한 기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김형준 목사는 “실패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실패를 기다리거나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심령을 겸손하게 하는 소중한 교훈을 심어 줍니다. 실패했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실패했다고 위축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할 때, 더욱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만을 치유해 주시고 더욱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소중한 통로가 됩니다. 절망과 패배감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여정 속에서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깨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자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넘어짐에도 실족하겠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주의 손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물며 나의 넘어짐으로 가정과 사회가 구원을 알게 된다면 기꺼이 넘어져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