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

성경말씀
로마서 11장 13~24절
설교일자
2021061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11 07:09
조회
6
◉ 롬 11:13-24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교만’과 같은 단어는 범위를 좁고, 넓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하죠. 바울이 교만해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을 교만하게 여기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과 어떤 범위와 어떤 삶의 정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판단은 다릅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그 자리에서 오래 활동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잘하고 못하는 것을 따지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지켜보십니다. 만약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하여 본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교만한 모습이 되어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1~12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나머지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선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립니다. 로마 교회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주후 49년에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진짜 떠났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로마 교회에서 강한 세력을 갖게 된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주후 54년 네로 왕이 등극했을 때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죠. 그들이 돌아왔을 때의 로마 교회는 이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강한 힘으로 시작된 로마 교회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주도로 변화된 상황에서 바울은 한 가지 걱정이 생긴듯합니다. 그것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였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반 유대인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13~24절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의 사도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도라는 직분으로 유대인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13~14절). 바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12절에서 “이방인의 풍성함”, “유대인의 충만함”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방인의 풍성함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세상의 화목”으로 나타나는데, 세상의 화목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진정한 화목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목의 열매는 부활입니다.
그럼 “세상의 화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16절부터는 농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농업 용어를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남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떡 덩이’는 믿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을 의미하죠. “뿌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키고, “가지”는 아직 믿지 않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것은 족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신실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신실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에게 적용됩니다.
바울은 뿌리와 가지에 관한 이야기를 ‘참감람나무(올리브 나무)’ 및 ‘돌감람나무(야생 올리브 나무)’라는 것으로 발전시킵니다. 이스라엘은 올리브 나무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렘 11:16; 호 14:5~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한다고 말씀하실 때, 올리브 나무는 가지치기 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죠(사 10:33~34). 가지가 꺾였다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을 접붙인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야생의 올리브 나무로 보았습니다. 야생 올리브 나무가 진짜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16~17절에 나타난 바울의 말은 교만해질 수 있었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8절에서는 뿌리가 너희를 보전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19절에서는 본래의 가지 자리에 너희 가지가 접붙여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19절의 내용으로 인해 온갖 이단과 사이비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인 이방인이 유대인의 자리를 몰아내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교만과 자랑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20절). 원래 있던 가지가 가지치기를 당했다면, 접붙인 가지도 가지치기를 당할 수 있겠죠? 그래서 바울은 21절에서 신앙의 기본,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22절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의와 행위와 전통을 강조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잘린 것처럼 이방인들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보다 이방인이 우월한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은 겸손을 강조하며 23~24절에서 이스라엘의 신앙이 올바르게 세워지고, 하나님을 향한 실실함이 회복되면 잘려 진 가지들이 다시 접붙임 받게 될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될까요? 그것은 25~32절에서 설명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하심에 대해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범죄를 행했다고 가정해보죠.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그런 죄를 저질렀어?”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런 나쁜 놈!” 죄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는 모두 단호해야 합니다. 단,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님의 시선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죠. 만약 인자함과 엄하심이 뒤죽박죽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과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그 누구도 우월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