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와 속죄소와 진설병

성경말씀
출애굽기 37장 1~16절
설교일자
202110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11 21:42
조회
37
▣ 출 37:1-16 법궤와 속죄소와 진설병
1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2 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
3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쪽에 두 고리요 저쪽에 두 고리이며
4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5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6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이며
7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에 쳐서 만들었으되
8 한 그룹은 이쪽 끝에, 한 그룹은 저쪽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쪽에 만들었으니
9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 그 얼굴은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10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11 순금으로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둘렀으며
12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13 상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14 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15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16 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따르는 병을 순금으로 만들었더라

성경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주의 깊게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전하여 “그대로 되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늘 어떤 사건과 상황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의미부여를 하려는 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하기 보다 어떤 의도와 의미를 따지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되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는 삶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성막’을 살펴보면서 ‘나’라는 "이동하는 교회"와 ‘구성교회’라는 "고정된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은혜와 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것은 그냥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연단과 훈련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브살렐이 언약궤와 속죄소와 떡 상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법궤는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다음 금으로 둘러쌌습니다. 속죄소는 순금으로 만들어졌고요.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을 뜻하는데, 속죄소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위해 속죄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졌기 때문에 속죄일의 피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떡 상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빵이 올라가는 상을 의미합니다. 떡 상은 순결함을 의미함으로 이스라엘 12지파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룩해야 했고,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저는 속죄소와 떡 상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인 ‘조각목’과 ‘금’을 주목했습니다. 먼저 ‘조각목’은 ‘싯딤나무’를 뜻합니다. 싯딤나무는 무겁고, 단단하며, 벌레가 없고, 썩지 않고, 건조해도 뒤틀리지 않는 좋은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학자들은 모세의 지팡이가 바로 이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싯딤 나무는 광야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나무의 뿌리는 50~60m 정도고, 어떤 나무는 2km까지 뻗어 있다고 합니다. 이 나무의 모습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본다면,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라는 찬양을 부르며, 말씀을 향한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금’입니다. ‘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욥기 23장 10절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구절에서 ‘금’을 이야기하기 전에 살펴야 할 단어는 ‘길’이라는 단어입니다. ‘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데레크’는 ‘삶의 방향’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향은 주가 아십니다. 그럼 우리가 정금과 같이 나아갈 길의 끝은 어디일까요? 창세기 3장 24절에는 ‘생명 나무의 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막혀 있었던 생명 나무를 향한 길이 구약에서는 ‘속죄소’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도마가 “그 길을 어찌 앏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믿음의 뿌리를 내려 생명을 향한 길을 향해 한 걸음씩 걷는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순금과 같은 모습으로 주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칼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칼빈은 속죄소에 있는 두 그룹의 형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해 언급합니다. 첫째, 두 그룹이 날개를 높이 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든 언제라도 그대로 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두 그룹이 서로 연결되어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우리가 서로 연합하며 조화를 이뤄야 함을 보여줍니다. 셋째, 두 그룹의 얼굴이 십계명의 돌판을 향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너무 큰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금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랄프 탈리버의 책 제목이자, 중국 북경 대학 총장을 지낸 ‘호적’의 명언입니다. 하나님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는 금을 필요로 하십니다. 연단과 훈련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이루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나와 가정과 교회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의 확실함을 가지고 출애굽의 과정을 지나, 큰 영광과 기쁨을 얻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