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들다

성경말씀
출애굽기 38장 1~8절
설교일자
2021101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12 21:02
조회
59
▣ 출애굽기 38:1-8 번제단과 물두멍을 만들다
1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다섯 규빗이요 너비도 다섯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세 규빗이며
2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제단과 연결하게 하고 제단을 놋으로 쌌으며
3 제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4 제단을 위하여 놋 그물을 만들어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에 두되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5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6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었더라
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놋을 씌우는 정사각형의 모형을 띕니다. 증거궤나 진설병상, 분향단이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뒤 정금으로 입혀진 데 반해 번제단이 놋으로 입혀진 이유는 앞의 성물들과는 다르게 번제단은 희생 짐승을 불에 태우는 제단으로 항시 불에 그을리기 때문에 융해점이 1,083도에 이르는 놋으로 도금하는 것이 적당했습니다. 그리고 길이 5규빗 너비 5규빗 또 높이 3규빗으로 당시 이방 신전의 제단들보다 크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단을 그 어떤 제단보다 귀중히 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을 제사가 드려지는 제단이었기 때문에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제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단의 규격을 보면 5는 은혜의 수를 의미하고 3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수를 보이므로 이 5와 3으로 이루어진 번제단은 하나님의 은혜와 완전함을 상징해줍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께 속죄와 감사의 예물이 드려집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번제단에 드려진 향기로운 희생 제물을 통하여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또한 인간을 만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제단이나 그 위에서 불살라진 제물은 모두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하는 화목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사람은 노아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뒤 여호와 앞에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정상적인 법칙대로 운행해 나갈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노아의 제사를 보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는 것임을 봅니다. 생각해보면, 방주에서 방금 나온 노아가 저 땅들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지금 뭐부터 해야 하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제단부터 쌓습니다. 노아는 홍수의 심판을 경험하며 분명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실로 이 땅의 주인과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만사의 시작과 끝이 여호와이심을 알고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것이 가장 우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같은 해와 달이 뜬다 하지만 이 모든 자연의 운행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 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가 이어 제단을 쌓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는 모두 하나님과 “언약”맺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아 제사로 여호와 앞에 나아갔다는 것을 저희는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제사를 통해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셨고 오늘 그 제사는 성막 안 번제단 위에서 올려지고 있습니다.
제물을 잡아 죽이는 것을 보며 그리스도를 봅니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를 경험해본 적 없어서 그것의 진실성이 약하게 다가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계시는 입장의 분들은 더 와닿는 말이겠지만 동물이 고안하며 영의 묵상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감정이 있는 것을 저희는 압니다.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를 형편이 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보낼 때 제 품에서 그 강아지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키우던 짐승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을 뜨고 가죽을 벗길 때에 “내가 내년에도 다시 잡아 올려야지!”하는 마음이 들었을까요? 그 번제단은 축복의 장소요 은혜의 제단이지만, 그 앞에 서는 저희는 가슴을 치는 회개가 잇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번제단의 영원한 재물이 되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저희는 그 보혈이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으로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번제단에서 뭍은 피를 물두멍에서 씻습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앉아 성경을 읽을 때에 눈물이 나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바로 마음에 붙어있는 죄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서 씻겨져 나가기 때문에 시원함을 경험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으로 오늘도 저희를 씻어내 주시기 소원합니다. 오늘날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부수신 그 화평의 예수그리스도 앞에 앉아야겠습니다. 물두멍에서 씻어져가는 역사가 그게 복음이지 않겠습니까? 성막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일이요 이루실 일이요 성령이 어루어가는 일들을 보여줍니다. 성막은 성령하나님이 하나하나 한땀한땀 지어나가게 하십니다.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충만하게 해서, 말씀을 깨닫고 감사가 있게 하여 교회를 지어나가게 하십니다.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평안함을 느끼는 것이 교회가 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어 이 물두멍의 받침을 거울로 만들었다고 말해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6절과 11절에 두 번 나오는 ‘본보기’라는 단어를 개역한글 성경은 ‘거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짐승을 잡아 그 피가 묻은 손을 물두멍에서 씻으며 그것을 본보기로 깨달아 너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시는 것과, 그리고 진짜의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0장 20절에서 물두멍을 말할 때엔 물로 씻는 것은 ‘죽기를 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기름부음 받은 성별된 제사장이라 하더라도 구약의 제사직은 모형이고 그림자였습니다.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이시고 영원한 생명수가 되어주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되어주십니다.
구약의 성막은 읽고 생각할수록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이 아프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의 은혜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느끼게 합니다. 오늘 이 번제단과 물두멍을 보며 오늘도 저희 은혜를 고백하며 살아가시기 소망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화평이, 성령님의 씻기심으로 평안이 경험되어 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