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오만한 신하들

성경말씀
호세아 7장 1~7절
설교일자
2021112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22 06:58
조회
7
◉ 호 7:1-7 왕과 오만한 신하들
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2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
3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4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
5 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
6 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7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신명기 16장 18절~18장 13절에는 “재판관, 제사장, 왕, 예언자”에 관한 규례가 등장합니다. 이 네 가지 직분의 공통점은 ‘권력’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에 미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시고 가르치기 위해 권력의 핵심이 되는 네 가지 직분에 대한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네 가지 직분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 네 가지 직분에 포함된 사람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잠언 6장 16~17절에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교만(!Wr, 룸)’은 “높다, 오르다, 일어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잠언 6장 17절에 있는 “교만한 눈”을 직역하면, “높은 눈”이 되죠. 즉, 우리가 사용하는 “눈이 높다”라는 말입니다. 눈이 높은 것이 왜 교만이 될까요? 하나님이 주신 것, 허락하신 것, 허용된 범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5~6장에서는 북이스라엘(에브라임)뿐만 아니라 남유다도 함께 거론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죄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7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북이스라엘에 관한 죄악이 등장하게 됩니다.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인애도 없으며, 은혜 앞에 겸손함도 없고, 넘치는 풍요 속에서 더 많은 탐욕을 내는 것과 우상을 섬기는 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의 생명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은 7~14장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되기 시작합니다.
1절에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의 죄악을 고발하고, 2절에서는 그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놓인 그들의 죄악은 거짓, 도둑질, 노략(약탈)질입니다. 호세아 6장 1~3절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거짓 고백으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은 앞에서는 회개를 외치지만, 뒤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행하는 죄악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호세아 6장 1~3절의 말씀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죄악을 범한 악한 존재가 되는 것이죠. 안과 밖(1절)에서 도둑질과 약탈을 일삼는 북이스라엘에 안전한 곳이 있을까요? 힘없고, 가난하며, 권력 없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죄악의 땅이 바로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의 땅에서 멈추지 않는 것은 바로 ‘피 비린내’입니다. 3절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지도자, 재판장을 쓰러지게 만드는(7절) 세력을 의미합니다. 즉, 호세아가 겪은 네 번의 쿠데타인 것이죠. 스가랴, 살룸, 브가히야, 베가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왕위와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새로운 왕이 일어날 때, 왕들은 거짓 예언자를 세워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왕으로 세워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악한 자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4~7절에 나오는 ‘화덕’이 상징하는 바는 아마도 왕과 권력자들에게 아첨하면서 동시에 반역을 일으키려고 준비하는 세력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악한 사람들 앞에서 어리석은 왕은 술로 인한 병을 얻고, 생각과 마음과 눈이 흐려진 왕은 악한 자들과 친교의 악수하고 있는 것입니다(5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어느 곳을 향해 뜨거움과 차가움을 나타내고 있는지요? 주님은 우리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계 3:15~16).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는 차갑고, 세상에 뜨겁다는 데 있는 것이겠죠? 이것을 뒤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요 8:32). 오늘 조금 더 주님을 알아가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볼까요? 주께서 우리에게 선한 지혜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