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동맹의 결과

성경말씀
호세아 8장 8~14절
설교일자
2021112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1-25 07:03
조회
3
◉ 호 8:8-14 잘못된 동맹의 결과
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9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10 그들이 여러 나라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11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13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고난과 고통 속에 머물 때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과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인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경험, 그리고 성경 속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와 경험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4절에는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사람인 빌립이 등장하고, 45절에는 나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빌립이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자,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며 빌립에게 소리칩니다. 나다니엘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알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어쩌면 지금 우리는 나다니엘의 모습처럼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고, 하나님이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보면서 좌절과 고통에 빠진 내가 어찌 선한 것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되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행여나 이스라엘이 뿌린 씨앗 중에서 어떤 것이라도 조금 자라게 되더라도 결국 이방이 삼키게 된다는 것(7절)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결국 이미 삼켜진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8절).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많은 기술자를 일본으로 데려가 자신들의 기술로 삼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 기술자들이었죠. 우리나라가 힘이 없었어도 일본인들이 탐낼만한 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이 점령한 후, “즐겨 쓰지 않는 그릇”처럼 되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죠. 이것은 예레미야도 언급한 내용입니다(렘 22:28; 48:38).
이스라엘의 강점은 손재주가 좋거나 문화의 다양함,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없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는 힘없이 앗수르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들나귀’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26장 12절에서 에서는 “들나귀같이 되리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들나귀는 홀로 남겨진 것, 사람들과 다툼을 일으키는 것,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도 앗수르로 끌려가게 될 이스라엘이 바로 들나귀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렘 2:24~25). 사실 예레미야는 더 강한 어조로 “들암나귀들이 성욕이 일어나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이 앗수르로 끌려간 것은 앗수르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에게 아부했고, 조공을 바쳐 자신들에게 다가온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0절). 그뿐만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은 더 많은 제단과 더 많은 종교인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하나님과 더 멀리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11절). 오히려 하나님의 만 가지로 기록된 말씀을 이상하게 여기며 그들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기를 거부했습니다(12절).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와 제물, 화려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애써 외면했습니다(13절). 그 결과는 역시 멸망입니다. 이스라엘이 쌓아 올린 모든 성과 업적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14절).
가끔 목사님들이 은퇴하실 때, “성역 0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의 삶이 성역이라는 건지, 수십 년간 해온 목회가 성역이라는 건지, 뭐가 성역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일하신 모든 삶의 여정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고자 ‘성역’이라는 말로 나타낸다면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열매일 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질그릇입니다. 질그릇 안에 예수와 복음이라는 보배가 담겨있을 뿐입니다(고후 4:7). 조금 더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의지하기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와 은혜를 맛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