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형제 되신 그리스도

성경말씀
히브리서 2장 10~18절
설교일자
202205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10 18:05
조회
8
◈ 히 2:10-18 우리의 형제 되신 그리스도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을 때, 인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명을 만족하게 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매우 원활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로 나누면, 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정서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 헤셀이 말한 “하나님의 정념”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럼 타락 후의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내면의 질서가 파괴되고, 불안함과 우둔함이 공존하며,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고 사악하게 변한 것이죠. 그렇다면 회심한 이후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요? 이전의 부패한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선택이 뒤따르게 됩니다. 이 선택은 하나님을 만나 영혼의 참된 변화를 누리는 삶과 은혜 안에 살면서 변화된 마음을 지키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분의 삶을 쫓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선지자와 천사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설명해줍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완성한 일이 무엇인지는 히브리서 2장 5절부터 소개되고 있습니다. 5~9절에서는 천사들은 고난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고난받으심으로 천사들보다 높아지셨고, 예수님의 높아짐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수 있는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10~18절 말씀은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신 신실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의 형제들(우리)와 함께 만물을 다스릴 것이라고 설명해줍니다.
우리는 ‘신’이 고난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신’이냐고 반문합니다.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신’에 대한 고정관념은 ‘신’은 인간이 겪는 고난을 겪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로마 시대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쾌락과 탐욕으로 가득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고난받으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이 하나님 아들들(사람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완전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죄와 고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직접 고난에 참여하셔서 우리를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창시자(개척자, 승리자)’입니다.
‘창시자(ajrchgov", 아르케고스)’는 ‘선구자’, ‘설립자’, ‘지도자’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뒤이어 나올 모세와 여호수아의 비교를 위해서는 ‘개척자’ 혹은 ‘선구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개척자(민 14:4)였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여호수아도 개척자(민 13:2~3)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대제사장보다도 위대한 분으로서 우리를 고난으로부터 이끄는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분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예수님과 예수님으로 인해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한 아버지를 가진 한 가족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실 것입니다.
12절은 시편 22편 22절을 인용한 것으로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인용한 시편입니다. 시편 22편은 다윗의 시로서 다윗이 고난 중에 있을 때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윗은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13절은 이사야 8장 17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결단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야 8장은 남유다 왕인 아하스 시대에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아하스를 위협했지만, 앗수르로 인해 오히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멸망될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사 8:11~13), 하나님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이 되실 것(사 8:14)이라고 말씀합니다. 12~13절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4~16절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혈과 육의 사람이기에 예수님도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부활의 승리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셨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모든 것은 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과 15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은 던졌습니다. 제자들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선지자와 대제사장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에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도 있었습니다.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일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었죠. 그런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오늘 히브리서 저자가 길게 설명한 것을 한 줄로 요약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통해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친이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을 이겨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영광의 자리로 이끄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믿으며 하늘 소망을 품고 사는 것이 오늘 우리가 드러내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