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성경말씀
히브리서 4장 1~13절
설교일자
202205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5-13 07:22
조회
12
◈ 히 4:1-13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매주 일요일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모여 예배드립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려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가 ‘안식’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피곤함으로 다가오게 되면 우리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불편을 감수하고 예배가 아닌 여행과 같은 즐거움을 택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은 무엇일까요?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안식(일)은 불안(출 20:12~17), 강요(신 5:12~14), 배타주의(사 56:3~8), 과중한 일(암 8:4~8)의 ‘저항’”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식의 개념은 범위가 넓지만, 창세기와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안식’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안식’의 개념은 창세기 2장 1~3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완성과 멈춤은 창조 행위를 진행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안식’은 기본적으로 ‘쉼’의 개념보다는 “하나님 계획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완성하신 뒤, 보기에 좋은 그 모든 것을 “누리셨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주일’이라는 날과 ‘예배’라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가고, 하나님의 세계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만끽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박해로 인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신앙을 회복하게 하려고 쓰였습니다. 박해 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성숙을 이루지 못했고(히 5:11~14),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사라져가고 있었으며(히 10:35~36), 박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히 10:33).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드리던 과거가 더 좋다고 생각하여 옛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와 천사, 모세와 여호수아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소개하면서 ‘안식’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안식’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이고, 출애굽기에서는 ‘가나안 땅’이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到來)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절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3장에서 경고된 ‘완악한 마음(히 3:12)’을 제거할 것을 계속 강조합니다. 복음을 듣고, 알고, 경험했다고 해서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예수님을 붙잡는 자들이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 생활을 근거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95편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안식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3절에 있는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라는 말씀은 창세기 2장 2~3절을 가리킵니다. 즉, 창세기 2장과 시편 95편에서 말하는 ‘안식’은 모두 같은 것으로서 불순종과 불신앙의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하고(1~5절), 동시에 그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6~13절).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할 방법은 ① 불순종을 버리고(6, 11절), ② 마음의 완악함을 버리고(7절), ③ 여호수아에게 주신 안식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안식을 사모해야 하며(8절), ④ 주님과 함께 안식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10절). 안식,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심과 기대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아서 모든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검과 같이 날카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과 몸을 찌를 때, 우리는 이것을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여 옳은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감출 수 없습니다(욥 26:6; 28:24; 시 33:13).
여호수아와 다윗, 솔로몬을 통해 이루어낸 땅의 점령과 안식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다윗도 참된 안식을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고, 다윗 시대에는 외부의 침략이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예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의 안식은 ‘생명 샘(계 7:16~17)’, ‘쉼(계 14:13)’, ‘새 하늘과 새 땅(계 21:1~5)’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고 하여 불순종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이 행하실 역사와 안식을 향한 소망을 갖는다면,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우리 삶에 가득 임하게 될 것입니다.